
김성태 <소낙엽 遡落葉>
–
초록색 잎을 그리는 사람
이준규
김성태의 개인전 <소낙엽 遡落葉>을 여는 글을 부탁받고, 같은 작가로서 그리고 이제는 더 나아가 함께 KEYSHAPE를 이끌어가는 동업자로서 그의 작업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글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해보게 되었다. 여러 방향의 글을 떠올렸지만, 내가 오랫동안 지켜봐 온 작가 김성태가 그리고 그의 지금까지의 작업들이 어떤 경로로 지금여기 영등포구 당산로 100 3층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지었다.
2017년 필자와 작가가 함께 대학생활을 했을 당시, 작가는 그의 졸업 개인전 <내맥>에서 투명한 아크릴 환봉을 조각해 잎이 없이 가지만 있는, 앙상하지만 키가 큰 나무를 만들었다. 그 나무는 여러 개의 부분들로 나뉘어서 제작되어,보관 시에는 나뉘고 전시 시에는 이어져 하나의 긴 덩어리를 만드는 구조였다. 부분들로 나누어 거대한 작품을 제작한 작가의 태도에서 필자는 그의 꿈과 그의 형편을 동시에 읽는다. 김성태는 감당할 수 있는 일과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자신의 안에서 냉정하게 구분 짓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일의 크기로 나누어 일정한 크기의 책임들을스스로의 짐으로 지우고 있었다.
그 이후 일본으로 떠난 작가는 도쿄에서 학업을 마친 이후 그곳에 머물며 별도의 작업실을 마련하지 않고, 자신의 넓이는 좁지만 높이는 높은 복층 구조의 집에서 작업을 진행한다. 지금 김성태의 전시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이 종이 기둥 작품들은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항상 조각을 만드는 자신을 꿈꾸는 작가는 자신의 한 몸 뉘기 힘든 그 장소에서 조각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했다. 그는 납작하고 평평한 종이들을 이용해 전시 시에는 그들을 테이프로 붙여 볼륨을 부여하고, 보관과 이동 시에는 차곡차곡 포개어 운반과 적재를 하는, 2017년의 아크릴 나무의 형식과 방법을 떠올리게 하는 자신의 돌파구를 마련한다. 필자는 여기서 자신의 형편을 인정하는 작가의 태도를 읽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의 형편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를 찾는 작가로서 김성태
는 종이와 테이프로 이루어진 몇 개의 덩어리를 만들어내고, 그 여러 개의 부분이 쌓아 올려져 전체가 되는 -부분이 전체가 되는 2017년의 나무 기둥과 큰 맥락을 함께하는- 작품들을 만들게 된다.
내가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작품들을 지켜봐 오며 들었던 의문은, 부분이 이어지고 결합되어 하나의 덩어리가 되는 작가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전체에 기여하는 부분들 또한 하나의 전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지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성태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2023년 한국으로 귀국한 이후 그는 안이 텅 비어 있는, 즉 볼륨은 있지만 매스를 지니지 못한 과거의 그것들을 재구성해낸뒤 알루미늄 주물을 통해 하나하나 무거운 덩어리들로 탈바꿈시킨다. 더 이상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 고향에 들어온 그가 결국 제일 먼저 해낸 것은 텅 빈 볼륨에 매스를 부여하여 작가가 생각하는 조각의 구성을 충족시키는 지독한 조각가로서의 집착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김성태의 2024년 개인전 <나루 끝에 진 그늘>에 리뷰를 작성했을 당시,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해 ‘가득 차 있음’과 ‘텅 비어져 있음’을 이야기했다. 일본에서 제작된 텅 비어져 있는 작품들에서 이동과 보관을 고려한 그의 형편을 보았고, 한국에서 주조되어 무거워진 그의 작품들에서 정착을 얘기하는 그의 형편을 보았다.
이곳, KEYSHAPE에서 그는 이제껏 그렇게 제작된 조각들을 이용하여 세 개의 기둥을 만들어낸다. 물리적으로 쌓여져 만들어진 지금까지의 그의 기둥들과 같은 형식의 기둥은 아니지만, 기둥을 구성하게 하는 요소들을 갖추어 펼쳐 놓거나 벽에 걸어 ‘벽에 걸린 기둥’, 혹은 ‘펼쳐진 기둥’으로 자신의 작품들을 조합하여 제시한다. 덩어리로서의 부분이 쌓여 전체를 이루었던 그의 작업이 지닌 형식이 이 공간에서는 더 세부적으로 나뉘어져, 각 면을 이루는 요소들이 결합되어 ‘기둥을 이루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2025년에 들어서며 작가는 필자에게 그림과 색(色)이 가진 감각에 대한 시도를 행하고자 하는 창작자로서의 욕구에대해서 털어놓곤 했다. 필자가 지켜본 바로, 정당한 이유가 없는 움직임과 선택이 용납되지 않는 그의 형식과 규칙에 대한 고집과 엄격함은 ‘회화’라는 그가 닿고자 하는 세계에 대한 가벼운 시도조차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덧붙여서 그의 작품이 지금까지 지녀온 색(色)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작가의 이성 교제가 끊긴 2020년 무렵부터 작품들은 무채색이 되었다. 교제했던 혹은 사모했던 이성 친구들을 그는 노란색, 초록색 또는 핑크색으로 표현하곤 했다.
그는 마침내 그림을 그려보려 마음을 먹었지만, 붓을 들어 물감을 천에 바르는 것이 아닌, 2017년의 회화 습작으로 제작된 캔버스의 천을 틀에서부터 벗겨내는 것부터 시작해 틀과 천으로 이루어진 회화의 본(本)을 이해하려고 했다. 2015년 학부생 시절 작가 본인의 하루의 감정을 색으로 표현해보겠다고, 매일 작은 수첩에 형형색색의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내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2025년 벗겨낸 캔버스 천의 모양과 그 모양에 부여된 규칙을 직접 눈과 손으로 경험해보고 나서야 회화로 들어가겠다는, 그림으로 가는 자신만의 집착적 규칙의 단계를 또 한 번 설정해서 붓을 들어 그림 그리는 일을 미루고 거듭해 무채색을 선택한 이유는, 어쩌면 이성과 교제의 단절이 야기하는 감정과 감각, 그리고 그 마음의 상실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 결국 2025년도 그가 줄곧 얘기해온 그림과 색(色)에는 닿지 못했다.
하지만, 나무에 매달려 있는 초록색을 가진 잎을 그가 캔버스에 그렸던 앞서 말한 2017년의 회화 습작과도 같다고 상정한다면, 그의 지금의 작품들은 생을 잃고 떨어져 썩고 다음 해에 잎이 또 자라나게 하는 낙엽과도 같다. 그 낙엽은 곧 부엽토가 되어 다시 초록색 잎을 피어나게 할 테니. 며칠 전 그는 필자에게 전시 제목이 “소낙엽 遡落葉”이라고 알려왔다. 낙엽에 거스를 소(遡)가 붙어 있다. 잎이 위에서 아래로 생을 잃으며 떨어질 때 불리는 잎의 이름 ‘낙엽’,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초록의 잎이 되어보려는 낙엽의 의지. 혹은 색(色)을 찾아 떠나는 험난한 여정을 암시하는 김성태의 2026년의 굳은 다짐.
그림을 그렸고 그리지 못했는지의 문제에 천착하지 않고, 더 나아가서 큰 맥락으로 그의 작품들과, 그가 한 명의 운영자로 있는 이 공간을 생각하면, 필자에게 그의 작업들이 놓일 이곳, KEYSHAPE은 마치 나무, 특히 2017년 그가 만들었던 아크릴 나무와도 같다. 이 공간에서 전시하는 모두가 부분으로 역할하고 전시 공간을 통해서 시간 안에 포개어 쌓여 하나의 거대한 전체를 이루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2017년 만들어진 그의 나무에는 기둥과 가지만 있었다. 이 공간이 그에게 그 나무와도 같다고 내 마음대로 얘기해 본다면, 여기 놓일 그의 작품들은 비록 그림이 되지 못했더라도 갈색 낙엽이 아닌 초록색 잎으로 보인다. 한 철 피어나 자신의 초록을 보여주는 잎들. 이 공간에 한시 피어있을 그의 잎들이 지금까지 김성태의 형편을 보여주고 난 뒤 낙엽이 되고 나면 또 다른 초록색 잎들이 이곳에 피어난다.
전시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이 맞이하게 될 과업은 ‘철이 되면 피어나게 하고 피어나면 보여지게 하는 것 그리고 거름이 되어 다음 잎을 피게 하는 것’. 앞으로 이곳, KEYSHAPE이라는 나무에서 김성태의 잎들이 지고난 뒤 그것을 거름삼아 피고 질 잎들은 기록으로서 포개어 쌓이고 양분이 되어 또 다른 잎들이 피어나게 한다. 김성태는 2025년 회화로서 초록색 잎을 그리지는 못했지만, 2026년 KEYSHAPE에 놓인 그의 작품들은 초록색 잎이 되었고 곧 다른 잎을 피어나게 하는 갈색 낙엽이 될 필연적 숙명에 놓였다. 어쩌면 그는 아직 초록색을 직접 그리지 못했을 뿐, 이미 다른 방식으로 초록색 잎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추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의 작품들을 학교 실험실에서 개구리를 해부하듯 나의 무딘 언어로 난도질하고 싶지않은 마음이 있다. 작품 하나하나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억지스럽게 해체하다 보면 작품이 내장이 까발려져서 시체가 되어버린 실험실의 개구리 같아 보일 때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가급적 필자 시점에서 김성태의 작업이 거쳐 온 물리적 과정들을 언급하되, 그의 설치된 작품들이 가지는 더 내밀한 내용들에 대해서는 함구하고자 했으니, 이 글을 읽은 관객들의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키셰이프에 그려질 김성태의 초록색 잎을 상상하며, 2026년 05월 대한민국 서울 귀묘(龜墓)에서
–
김성태
2026.06.05 – 06.21
13:00 – 19:00 (매주 월, 화 휴관)
서울 영등포구 양평로100 3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