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윤 <안녕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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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의 기원
고경호
루이스 부르주아는 그의 바느질 작업에 대해 “바느질은 복원을 의미하며, 그것은 용서를 구하는 행위”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해당 내용을 자신의 어린 시절 어머니가 옷가지 등을 수선하며 바느질해 왔던 기억에 맞물려 설명한다. 그의 어머니는 물리적인것들을 고치기 위해 바느질을 하였고, 작가는 심리적 치유 또는 관계의 탐구로써 바느질이라는 행위를 이어 나갔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동시에 바느질은 그들의 삶과 작업을 꾸려나가는 움직임으로도 보인다.
바느질이 미술 안에서 어떠한 맥락으로 기능했는지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려 한다. 바느질은 전통적 여성 (가사)노동의 맥락에서 그들의 일상과 권력구조에 관한 질문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억압의 도구인 동시에 저항의 언어”라 이야기한 로지카 파커의 말처럼 고급미술과 공예로 구분했던 보수적 관습 체계에 물음표를 던지는 행위이다. 나아가 바느질은 개인과 사회 또는 역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행위이자 관계를 이어 나가는 연결의 메타포, 혹은 기억과 욕망을 담는 아카이브로도 기능한다. 여기에 더해 바느질은 그야말로 오랜시간과 노동이 들어가는 수행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을 염두에 두며, 본 전시 《안녕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유재윤은 손바느질을 통해 작업한다. 화려한 색상의 펠트와 펠트를 이어 인형을 만들고, 본인 삶에 의문과 욕망의 대상인 사물을 재현하는가 하면, 지나간 손의 흔적인 실선으로 드로잉 한다. 작가의 작업들을 직조하고 소개하는 입장에서 그 저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지, 한다면 어디까지? 그리고 이것의 유의미를 고민했다. 그러다 작가와 작업에 대한 결론적 이해는 과정인 바느질, 즉 행위에 대해 그리고 행위가 촉발된 삶의 일부를 드러내야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결론을 감히 내렸다.
유재윤 작가는 본인의 대학 선배로 꽤 친분이 있던 관계였다. 단둘이 만날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도 나도 학과 생활에 적극적이었던 만큼 나름의 유대가 있었다. 졸업 후 한참동안은 소식을 건너 건너 들었다. 그러다 재윤이 다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게 2016년일까. 10년 전의 이야기다. 그가 오랜 시간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 어디서 어떤 작업을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몇 년 후 그의 개인전 《중얼중얼》(2020, 플레이스막1)에서 마주한 그의 작업은 형형색색의 펠트 인형들이었다. 3mm도 안 되는 바늘땀을 보며 으레 기계로 제작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나하나 손바느질로 만든 작품들이었다. 깜짝 놀라 작업 과정에 대해 물었더니 어머니 병실 침대 옆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는데 할 수 있는 것이 바느질이었다는 대답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손바닥 크기에 유치할 정도로 발랄한 생김새를 한 인형들이 달리 보이며 전시의 모든 인상이 다르게 느껴졌다. 재윤의 작업에서 삶의 일면을 느낀 순간이다.
유재윤의 손바느질 작업에 중요한 지점은 이동이다. 그는 무겁지 않은 천과 실, 바늘을 들고 삶의 틈새―어머니의 병실 침대 옆, 가족을 돌보는 와중, 생계를 위한 일을 하는 중간의 틈등―사이의 시간을 바느질로 채운다. 공간과 상황적 제약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가깝고 적합한 도구인 동시에 천과 천을 꿰매듯 삶과 미술을 연결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바느질을 통해 무엇을 만들까. 그의 초기작, 그러니까 어머니의 병실에서 탄생한《중얼중얼》(2020, 플레이스막1)의 작품들은 작가의 주변을 채우던 인물들을 캐릭터화해 만들어낸 인형 작업이다. 동네 어디서 보았던 할머니들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샤워하며 노래부르는 옆집 사람 등 일상에서 마주친 대상에 캐릭터를 부여하며 드로잉하고 이를 펠트에 손바느질하여 만들어낸다. 여기서 그가 가볍고 원색적인 펠트를 사용한 부분을 주목한다. 제약적 상황에서 이를 비관하지 않고 낙관하려는 태도와 일상의 작은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선을 우스꽝스러운 색색의 인형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유재윤은 《TRoPINK》(2024, 다이브서울)에서 일상과 위계에 대해 보다 본격적인 질문을 던진다. “트로피는 노력의 대가임과 동시에 1등만이 가질 수 있는 위계적 구조를 상징하는 오브제이며 상징적 남성성의 표상처럼 보이기도 한다.”(작가노트 중)는 생각은 본인의 일상을 채우는 사소한 사물들을 조합하여 구성된 핑크 펠트 트로피 연작으로 만들어졌다. 작가는 흔히 여성적 색으로 여겨지는 동시에 가볍고 아둔한 여성성으로도 소비되는 핑크색 펠트로 모든 작품을 제작하여 색에 관한 보편적 선입견에 대한 의문을 드러낸다. 나아가 단단한 대상의 원 속성을 부드럽고 유연한 재료로 치환하여 승자의 전유물인 상징적 대상을 일상으로 전복한 결과를 보여준다.
본 전시에서는 세 번째 개인전 《까슬거리는 바람》(2026, 컬러비트갤러리)에서 선보인 손바느질 드로잉 작업을 확장해 선보인다.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욕망’에 관한 대화였다. 평소 그가 욕망을 내비치는 성격이 아닌지라 해당 단어를 들었을 때 의외라는 생각을 한 게 사실이다. 대화를 나눠보니 아, 무거운 마음이 저렸다. 그가 욕망하는 것은 성공이나 부, 명예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욕망은 일상의 안녕. 편찮으신 어머니를 돌보는 삶과 작업을 꾸릴 수 있는 환경이 조금 더 나아지는 것. 유재윤은 이런 욕망을 드러내는 혹은 들키는 것을 ‘부끄럽다’고 이야기했다. 누구나 바랄 수 있는 보통의 것이니 욕심이 아니라 말했지만, 이 부끄러움은 염원의 반복된 좌절에 대한 결과라고 답했다.
그럼에도 유재윤은 안녕을 기원한다. 전시를 채우는 연작은 이불 속통을 뒤집어 그 안쪽 면에 손바느질로 드로잉한 작업이다. 작가는 어느 날 우연히 집에서 액운을 막아주는 삼두일족응(三頭一足鷹)이 그려진 부적을 발견한다. 평소 무사태평을 욕망하던 그는 이후 관련된 부적과 상징, 신화적 동물 등의 자료를 수집했다. 안녕의 기원과 좌절이 반복되는 것과 같이 이 형상들을 무너뜨리고 재조합하며 새로운 액막이 대상을 그려나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신만의 욕망의 상징을 몸에 닿는 이불, 거기서도 까뒤집은 속통 안쪽 면에
손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새겼다. 이 과정이 무언가를 바라며 잠자리에 부적을 두는 무속신앙의 형태처럼 보이기도 한다. 들키기가 부끄럽다고 말한 욕망을 신체에 닿는 안쪽 면에 드러내는 내밀하고도 직접적인 수행적 행위. 손길이 지나간 흔적은 안녕을 기원하는 내비치기 부끄럽던 욕망이자 은유적 고백이다.
글의 앞머리로 돌아가 유재윤의 작업을 다시 바라본다. 그는 여성작가이고 어머니의 딸이다. 어머니를 돌보는 가운데 선택한 손바느질을 통해 우리는 그의 작업과 만났다. 지난한 행위를 수행하며 작가는 본인의 삶과 기억, 욕망과 좌절, 관계와 모순을 질문하고 치유해 나간다. 그 긴 수행의 시간에서 작가는 실과 바늘로 천의 안과 밖을 오가며 ‘진심으로’ 무언가를 염원하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It is a claim to forgiveness.” 루이스 부르주아가 구했던 용서는 어쩌면 끝없는 좌절 가운데서 바라는 평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본 전시는 ‘안녕’과 ‘기원’ 각 단어의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수렴한다. 안녕은 인사와 무탈함으로, 기원은 시작과 기도로. 유재윤의 작업은 당신에게 건네는 인사이자 시작이며 나와 너의 무탈한 하루에 대한 바람이다. 어머니의 딸이었던 재윤은 전시를 준비하는 기간 중에 결혼을 했고, 엄마가 되었다. 잉태한 가운데 반복된 흔적을 남기며 부르튼 그의 손을 잡고 진심을 담아서 안녕을 기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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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호 기획
유재윤
2026.08.19 – 08.30
13:00 – 19:00 (매주 월, 화 휴관)
서울 영등포구 양평로100 3F














